파이링's Blog
개인적인

핀란드.. 헬싱키

이런 저런 2004. 3. 24. 14:31 by 파이링

아름다운 침엽수림과 산타클로스의 나라 핀란드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 꽁꽁 언 바다 위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 짙은 블루의 색상을 즐겨 입는 여인들... 우리 일행이 산림의 나라 핀란드에 도착했을때는 백야축제가 한창인 여름철이라 산타클로스의 나라라는 인상은 가질 수 없었다.. 다만 우리에게는 잠자기 전에 껌을 씹는 나라로 더 알려지지 않았나?

핀란드인들은 1세기경부터 현재의 국토에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1155년에 스웨덴의 침략을 받아 650년간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초에는 다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1920년에 이르러 핀란드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사실... 난 이글들을 누가 보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 다른 홈피에 올렸던거를 이번에 한미르 블로그로 옮기면서 그때 기억을 되살리며 약간씩 추가할건 추가하고 있는 중이다.

3박 4일의 짧은 러시아 여행을 마감하고 우리 일행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역에서 열차를 타고 헬싱키 중앙역에 도착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가이드 아줌마에게 소주와 오징어를 건네자 엄청나게 좋아했다.) 열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밖으로 보이는 건 푸른 숲밖에 없었다는 기억만.. 지루함을 잊고자 우리 일행은 소주만 무수히 깠던 기억이 난다. 또한 잊혀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

역시 러시아와 핀란드를 달랐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러시아인들보다는 부티가 흐른다고나 할까? ㅋㅋㅋ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열차에서 마신 소주기운을 떨쳐 낸다고 호텔에 있는 핀란드식 사우나를 가봤다. 뭐 우리동네 사우나보다 못한거 같기두 하고..

호텔 앞으로 멋진 호수가 있어 몇명이서 산책을 나갔다. 시간상으로는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백야라서 대낮보단 못해도 꽤나 환했다.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어 다가갔더니 동양인이었다. 원래 외국나가서 우리나라 사람 만나면 반가운 법. 혹시나 하고 말을 붙여보니 중국인이었다. 중국 대학생이라는데 대따 영어를 잘했다. 역시나 이넘도 우리의 월드컵 4강 진출을 부러워 하고 있었다.

호숫가에 정박한 요트.
주인이 보기전에 빨랑 찍고 튀자

어따 감히...???

이런 저런 2004. 3. 23. 17:17 by 파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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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째날... 2002년 6월 22일.. 광주에서 스페인하고 월드컵 8강전을 하는 날. 열심히 응원하여 꼭 승리를..

상트 페테르부르크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던 도중 마주쳤던 빨간옷의 아저씨 아줌마들을 여름궁전에 가서 또 다시 마주쳤다. 일행중 유일하게 빨간옷을 입고 있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아침에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가서 가이드 아줌마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붉은 악마 옷을 입고 간 덕분에 애교스럽게 벌금 없이 넘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름궁전 - 러시아 황제와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 분수궁전(페레르고프, Peterhof)

"러시아의 베르사유", "러시아 분수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페테르고프는 황제의 가족들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이 여름을 보내던 곳이다.

페테르고프는 페테르부르크에서 30여㎞ 떨어진 핀란드만 해변가에 위치해 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여름 거처지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표트르대제의 명령으로 1714년 착공된 이래 9년이 지나서야 완공이 되었다고는 하나 실제로 공사가 끝난 것은 150년이나 지난 후였다. 1000 헥타르가 넘는 부지에 20여개의 궁전과 140개의 화려한 분수들, 7개의 아름다운 공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사에는 러시아와 유럽 최고의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이 총 동원되었다.

이곳의 최대의 건축물은 바로 대궁전(발쇼이 드바레츠)과 그 앞의 계단식 폭포라 하겠다. 원래 이 궁전은 1714-25년에 걸쳐 표트르 대제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현재의 바로크풍 장식은 1745년부터 10년간 겨울궁전을 건축한 라스트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 곳은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 내부 인테리어는 조심스럽게 복구되어 오늘날에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페테르고프는 궁전 뒷편의 `윗공원`과 "The Necklace of Pearls"라고 불리는 `아랫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랫공원의 중심은 바로 대궁전 앞의 폭포와 그것을 장식하는 주변의 아름다운 64개의 분수이다. 삼손(Samson)이라고 불리는 대분수에서 시작되는 운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배들이 도착하는 해변가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장난스런 모양의 분수들과 예술품과도 같은 수많은 분수들은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과 어울려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여름궁전을 떠나 시내에 있는 한식당에 점심을 먹으로 들어갔다. 월드컵 8강전 연장전이 한창이었다. 우리 일행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외국에서 본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응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연장전에서 승부를 못가르고 피말렸던 승부차기...

이날의 히어로는 단연 나..
가는 곳마다 외국인들이 붉은 옷의 `Corea`를 알아보고 아는척 하며 인사들을 건네왔다. 스포츠의 힘.. 특히 월드컵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러시아인들은 그들이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에대한 열등감을 코리아가 깨부순데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듯한.. ^^;

페터 앤 파울 요새(PETER AND PAUL FORTRESS)

적의 급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1703년 세워진 요새이다. 18세기 중반부터는 형무소를 겸하였다. 이 복합 구조물은 Peter 와 Paul 대성당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이 대성당의 디자인은 D. Trezzini가 하였다.

볼세비키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순양함 오로라

피터 대제의 오두막 부근, "St.Petersburg" 호텔 바로 건너편에는 역사적인 순양 한편이 영구정박하여 있다. 1897년부터 1900년에 건조되어 1904-05년 러일전쟁에 참가,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7000톤급 일반 순양함에 불과했었던 이 함정은 1917년 10월 1일 오전 9시 40분에 함포 한방을 쏘아올림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바로 그 신호탄 한발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레닌을 선두로한 볼세비키 혁명이 시작된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상전투를 위해 순양함의 대포만 떼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현재 이 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준 높은 발레 공연 관람

예술의 도시로 불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20개가 넘는 전문 공연장이 있다.
어느 공연장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겠다.(머리가 나빠서...) 가이드 아줌마의 꼬임에 빠져 `백조의 호수` 발레를 구경했다. 관람료가 꽤 거금이었던 기억이...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발레단 공연보는 것 보다는 절반가격이라길래...
다른 일행들은 서커스 공연을 보러갔는데 거기가 훨씬 재밌었을것 같았다.

러시아 속의 유럽,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둘째날...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비행기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다. 우리나라 여승무원만 생각한 나는 러시아 `쭉쭉빵빵` 승무원을 상상했었는데... 웬걸.. 한숨만.. ^^; 펑퍼짐한 사십대 아줌마들이 여승무원이라니..ㅋㅋ
하지만.. 이게 웬 조화인가? 일행하고 떨어진 좌석에 앉아서 맹하니 있는데.. 그야말로 러시아 쭉쭉빵빵 미녀가 내옆에 앉는게 아닌가? 나이는 20살 정도.. 서로 말 안통하는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시도한 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처음 간다는 러시아 미녀는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상당히 흥분되어 있던거 같았다.
아니.. 그 도시가 얼마나 아름답길래..

수많은 사람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물 위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북서쪽으로 71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러시아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이 곳은 문화적 중심지로, 그리고 18-19세기에 지어진 우아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곳이다. 모스크바가 동양적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라면 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으로 가는 통로"라는 호칭에 걸맞게 좀더 서양적인 특징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지어진 이래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이 곳은 많은 동란과 혁명으로 굴절 많은 역사의 장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의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시절의 레닌그라드, 1991년 공화국으로 다시 거듭나면서 그 명칭이 과거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회귀하는 등 그 명칭에서도 급변하는 역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쭉 뻗은 대로, 수많은 운하와 아름다운 다리들, 6,7월이면 볼 수 있는 백야의 광경은 가히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북쪽의 베니스"라고 칭송할 만 하다.

러시아 문화의 보고,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궁정광장 한 편에는 재정 러시아 황제들의 거처였었던 겨울 궁전이 네바 강을 따라 230m 나 쭉 뻗어있다. 담록색의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의 이 궁전은 1762년 라스트렐리(B.Rastrelli)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총 1056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져있다. 게다가 건물 지붕 위에는 170개가 넘는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겨울 궁전은 오늘날 총 6개의 건물로 연결되어 있는 에르미타쥐 국립 박물관 건물 중의 하나이다. 1764년 예까쩨리나 2세가 서구로부터 226점의 회화를 들여왔던 것을 계기로 현재는 약 300만점의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곳은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 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과 고대화폐 전시관 등 총 6개의 큰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한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하는 에르미타쥐에서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125개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 미술관으로 이 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지만 몰래 몇장 찍었는데 썩 잘 나오진 않은 것 같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 이삭 성당

청동의 기마상 맞은편에 위치한 거대한 황금빛 돔은 성 이삭의 날인 5월 30일에 태어난 피터 대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성 이삭 성당으로, 돔의 크기가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인 101.5m에 이르는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눈에 쉽게 띄는 건축물이다. 길이 111.2m, 폭 97.6m로 총 만 4천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의 이 성당은 1818년, 몽페란드(A.Moontferrand)에 의해 설계된 후 40년이 지나서야 완공되었다. 이 엄청난 공사에는 총 40만명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당을 장식하는 데에는 대리석과 반암, 벽옥 등 40여가지가 넘는 다양한 석재가 사용되었고, 성당의 내부에는 성서의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150점이 넘는 러시아 화가들의 회화와 조각품, 12000여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62개의 독특한 모자이크 프레스코화가 전시되어 있다. 43m에 달하는 교회의 전망대에서는 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직접 올라가 보진 못했다.

벌써 셋째날은 저물고.. 일행은 호텔밖으로 나와 같이 맥주를 마셨다. 러시아는 물가가 저렴해서 맥주는 원것 마실 수 있었다. 맥주맛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취기가 오른 나와 일행 몇은 호텔 옆으로 흐르는 강가로 나가 주변 야경을 구경하며 이국의 정취를 맘껏 느끼며 놀았다.

호텔 바에서는 러시아 무희들이 펼치는 쇼가 한창 진행중이라며 일행중 나이 지긋한(?) 몇명은 거기로 향했다. 나도 가볼까 하다가 투숙하기 전에 로비에서 비교적 가까운데서 보았던 그녀들의 온몸에 난 체모들이 징그러웠던 기억이 떠올라 그만 두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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